-
'썩어빠진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전면무상 급식은 정치꾼들의 주장이고, 정말 배고픈자들은 그따위 허례허식과 명분에 연연하지 않는다' 뭐 대충 요약하자면 이 정도의 글을 읽은 김이 분노하며 전달했다. 그 밑으로 매우 공감이라며 '실제로 배고픈자들은 어찌되든 상관없겠지. 문제는 그걸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우리들의 문제니까'라고 댓글이 달렸다는 얘기도.
무상급식에 관해 찬/반은 물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벌손자도 공짜로 밥먹는게 말이되냐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거고. 얼추 들으면 이 주장들은 나름의 설득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에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밥은 교육이다'라고. 의무교육에 급식이 당연히 포함되는 것을 주장해야 하는 걸까, 헌법에 포함된 국가의 의무, 국민의 권리 이야기를 해야 하는걸까, 그 무상급식하는데 들이는 세금이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세빛둥둥섬' '디자인서울'하는데 들인 돈의 3분의 1도 안된다는 얘기를 해야 하는걸까, 그것도 아니면 애들이 처음 배우는 교육이라는 것이 '차별'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해야 하는걸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의 기준이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왜 옳으냐고 물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정말 옳은건데' 그렇게만 설명할 수는 없는거니까. 마땅한 근거와 논리와 맥락으로 자근자근 설명하고 동시에 그렇지 않은 의견들에 귀 기울여야 하고. 그렇게 수다스럽게 떠들썩거리는 것이 '민주주의' 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 소란스러운 과정들을 사실 매우 귀찮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다를 수 있음'을 알고는 있으면서 '다름'이 귀찮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깝깝해서 말을 말자 싶기도 했다. 다른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인정하는 과정이 정말 어려운거구나, 매번 수 많은 '다른 입장들'을 마주하며 겪고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저 따위의 이야기는 정말.
어떻게 해야 '정작 배고픈자들은 연연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걸까. 그 사람들은 먹을 수 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고마워 한다는 걸까, 아니면 그 생각도 못 한다는 걸까. 그 마음에 대한 지레짐작에 너무 놀랐다. 어쩌자고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와 버렸나 싶어서.
'한번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본 적이 없는 거겠지?'라고 슬기가 말했다. '어떻게 하면 가난을 실제로 겪지 않고 그러면서도 그들을 그냥 사람으로서 이해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고 김이 물었다. 김의 말에 공감했다. 가난을 겪어본 적 없고, 주위의 가난에 신경써본적 없고, 그 것에 대해 요만큼도 생각해본적이 없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가난이 이해의 영역안에 들어오려면, 내가 겪지 않았다면,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선배가 혹은 후배가 또 아니면 다른 누군가라도. 그 것도 아니라면 소설, 영화, 음악, 드라마 등등 어떻게든 누군가의 가난이 내 영역으로 들어오는 최소한의 기회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 경험이 없었구나 생각했다.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모두가 떠드는데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니까. 부는 구체적인데 가난은 마냥 추상적으로만 남아 버리니까. 부자의 생각, 생활, 노하우는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접하니까 잘 알수 있지만 가난에 대해서는 노력하며 접근해야 하니까. (사람들은 더 행복하고 좋은 것을 보려하지 아프고 힘든 이야기는 피하게 된다는 것도 이유겠고) 그렇게 계속 가난은 사회의 책임은 없는 게으른 사람의 책임이 되고, 머리나쁜 개인의 책임이 되어, 마음도 자존심도 없는 베풀어주는 것에 마냥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정말. 어쩌다 이렇게 까지 와버렸을까. 이렇게까지 되어버렸을까.
+
이런 대화를 나누며 김도 나도 슬퍼했다. 동시에 내가 가장 슬프다고 느낀 부분은 돈이 주는 구체적인 행복들, 안정감들 그것이 무엇인지 나 또한 너무나 잘 알며, 그걸 바라고 있는 내 모습이었고.
-날리,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