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을 지켰다, 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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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어떤 책 광고를 봤다. '나는 국민을 지켰다'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었다. '소신있게 한 길을 걸어왔다.'는 광고문구가 쓰여있었다. "이 땅에 불법폭력시위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책의 한 구절도 실려 있었다. 용산참사를 진두지휘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의 책이다.


그 해, 겨울을 기억한다. 몇 발자국 앞에서는 누가 더 행복하나 뽐내기라도 하듯 불빛이 번쩍이는데, 그 곳은 컴컴했다. 한 밤중도 아니였는데, 가로등 불빛 하나 켜진 곳 없는 그 어둠이 너무 무서웠다. 이런 걸 두고 을씨년 스럽다고 하는구나, 절절히 느꼈다. 경과 나는 국화꽃 한 송이 올리고 꾸벅 절을 하고 가만히 보다 나왔다. 어울리지 않게 눈이 내렸다. '무슨 눈이냐 얼어죽을' 그 한마디 정도 하고는 경도 나도 별 말 없이 남일당을 지나왔다. 공권력이 국민에 대한 보호가 아니라 돈에 대한 보호를 향해있다는 걸 확실히 깨달은 겨울이었다.


무슨 개발이고 어떤 도시발전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는 안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잘못 진압하면 그 위에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뻔한 상황이었다. 그 사람들이 무슨 어마어마한 무기들을 지녔다고 경찰특공대씩이나 투입되서 사람을 죽게만드나. 살아보겠다는 생존권보다 우월한 개발이란게 무엇인지, 이 모든 상황들을 여전히 불법폭력시위로 단순화하는 그 빌어먹을 소신이 무엇인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날리,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렸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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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빠진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전면무상 급식은 정치꾼들의 주장이고, 정말 배고픈자들은 그따위 허례허식과 명분에 연연하지 않는다' 뭐 대충 요약하자면 이 정도의 글을 읽은 김이 분노하며 전달했다. 그 밑으로 매우 공감이라며 '실제로 배고픈자들은 어찌되든 상관없겠지. 문제는 그걸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우리들의 문제니까'라고 댓글이 달렸다는 얘기도.

무상급식에 관해 찬/반은 물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벌손자도 공짜로 밥먹는게 말이되냐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거고. 얼추 들으면 이 주장들은 나름의 설득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에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밥은 교육이다'라고. 의무교육에 급식이 당연히 포함되는 것을 주장해야 하는 걸까, 헌법에 포함된 국가의 의무, 국민의 권리 이야기를 해야 하는걸까, 그 무상급식하는데 들이는 세금이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세빛둥둥섬' '디자인서울'하는데 들인 돈의 3분의 1도 안된다는 얘기를 해야 하는걸까, 그것도 아니면 애들이 처음 배우는 교육이라는 것이 '차별'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해야 하는걸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의 기준이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왜 옳으냐고 물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정말 옳은건데' 그렇게만 설명할 수는 없는거니까. 마땅한 근거와 논리와 맥락으로 자근자근 설명하고 동시에 그렇지 않은 의견들에 귀 기울여야 하고. 그렇게 수다스럽게 떠들썩거리는 것이 '민주주의' 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 소란스러운 과정들을 사실 매우 귀찮아 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다를 수 있음'을 알고는 있으면서 '다름'이 귀찮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깝깝해서 말을 말자 싶기도 했다. 다른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인정하는 과정이 정말 어려운거구나, 매번 수 많은 '다른 입장들'을 마주하며 겪고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저 따위의 이야기는 정말.

어떻게 해야 '정작 배고픈자들은 연연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걸까. 그 사람들은 먹을 수 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고마워 한다는 걸까, 아니면 그 생각도 못 한다는 걸까. 그 마음에 대한 지레짐작에 너무 놀랐다. 어쩌자고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와 버렸나 싶어서.

'한번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본 적이 없는 거겠지?'라고 슬기가 말했다. '어떻게 하면 가난을 실제로 겪지 않고 그러면서도 그들을 그냥 사람으로서 이해하게 만들 수 있을까'라고 김이 물었다. 김의 말에 공감했다. 가난을 겪어본 적 없고, 주위의 가난에 신경써본적 없고, 그 것에 대해 요만큼도 생각해본적이 없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가난이 이해의 영역안에 들어오려면, 내가 겪지 않았다면,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선배가 혹은 후배가 또 아니면 다른 누군가라도. 그 것도 아니라면 소설, 영화, 음악, 드라마 등등 어떻게든 누군가의 가난이 내 영역으로 들어오는 최소한의 기회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 경험이 없었구나 생각했다.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모두가 떠드는데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니까. 부는 구체적인데 가난은 마냥 추상적으로만 남아 버리니까. 부자의 생각, 생활, 노하우는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접하니까 잘 알수 있지만 가난에 대해서는 노력하며 접근해야 하니까. (사람들은 더 행복하고 좋은 것을 보려하지 아프고 힘든 이야기는 피하게 된다는 것도 이유겠고) 그렇게 계속 가난은 사회의 책임은 없는 게으른 사람의 책임이 되고, 머리나쁜 개인의 책임이 되어, 마음도 자존심도 없는 베풀어주는 것에 마냥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정말. 어쩌다 이렇게 까지 와버렸을까. 이렇게까지 되어버렸을까. 

+

이런 대화를 나누며 김도 나도 슬퍼했다. 동시에 내가 가장 슬프다고 느낀 부분은 돈이 주는 구체적인 행복들, 안정감들 그것이 무엇인지 나 또한 너무나 잘 알며, 그걸 바라고 있는 내 모습이었고.  

-날리,


-누군가는, 굶어서, 죽는단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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끽해야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어디까지 그 마음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웃기는 소리다.


한겨레 사회면에 서른 둘 여성의 죽음이 실렸다. 예비 시나리오작가인 그 여성은 굶어죽었다. 실력도 제법 인정받아 졸업하며 시나리오 계약을 했다더라. 영화판에서 신인 작가들은 영화가 제작되기 전까지는 계약금의 일부만 받는단다. 엎어지기 다반사인 영화가 제작까지 가지 못하면 그 일부로 살아가야 한다. 계약은 계약이니 다른 곳에서 지금 당장 제작하자 하더라도 시나리오를 팔 수는 없다. 결국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가 한 때는 전도유망했을 그녀의 마지막 문장이 되었다.


윤경은 요즘 동물처럼 먹기만 하는데 굶어죽는 사람이 있다니 죄책감과 쇼킹함을 느꼈다고 했다. 은지는 돈이 얼마나 없으면 굶어죽을 수 있는지 감도 안온다고 했다. 나라고 다른 건 없다. 고기가 먹고 싶으면 어떻게든 먹고 회가 먹고 싶어도 어떻게든 먹고 장어가 먹고 싶어도 어떻게든 먹으며 산다. 매운건 매워서 짠건 짜서 싱거운건 싱거워서 가린다. 어디 먹기만 하나. 엄마가 챙겨준 아이케어 비타민도 먹고 오메가3 비타민도 먹는다. 엄마는 밖에서 밥 제대로 못 챙겨먹을까봐 영양소가 충분하다는 쉐이크도 하나씩 챙겨준다. 덜먹어도 되는 것까지 더먹으며 산다. 그 배고픔과 설움 같은거. 도대체 어떻게 알리가 있나.


친구들과 경제관련 얘기를 했었나. 여하튼 이렇게 수백개의 국가중에서 자원이라고는 인간밖에 없는 우리나라가. 11위인지 12위인지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어디를 둘러봐라. 굶어죽는 사람있나. 요즘은 굶어죽는 사람은 없지 않냐. 결국 살만큼 산다는건데, 그러니까 우리 이제 더 개발하고 더 발전하고 더 많이버는거 말고 덜 벌어도 함께 살자.의 얘기를 나눴다. 오늘에야 틀린얘기가 있었구나 아차 싶었다. 내가 모르는 거구나. 어렵다 어렵다 해도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는 정도로 나는 우리나라의 수준을 생각했는데. 아니였구나. 떡하니 이렇게 서른 두살의 죽음이 있었다.


이제 더죽이지는 말자고 밖에 할말이 없다. 이게 복지의 문제인건지 영화판의 문제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러 안먹는거 말고 못먹는 절망은 모르지만. 좋은 영화한편 만들어 내고 싶어했을 사람이 적어도 배고파서 죽지는 않는 나라가 되야 하지 않겠나. 더 잘살지는 않아도 되니까 더 못사는 사람들만 안 늘어났으면 좋겠다. 박경철의 말대로 행복은 상대조건이니까 국가가 나서서 만들어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불행은 막을 수 있지 않나. 그게 그러니까 그렇게 해야 원래 국가라는거 아닌가.

-날리,


-박민규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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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올 뻔'하다는 표현은 말장난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나는, 이 상황이 너무 감동적이고 좋아서 눈물을 흘렸다. 세상만사 온갖것이 아름다워보이는 순간이었다. 내가 누굴만났는데.  내가. 내가. 박민규를. 무려 박민규를. 내 눈앞에서 박민규가. 예의 그 선글라스를 쓰고  다홍색 폴라에 빨강색 자켓을 입고 청바지에 워커를 신고. 사람 박민규가 진짜 박민규가 있었는데.


며칠 전 평화방송 홈페이지에 들렀는데, 북콘서트 안내가 있었다. 박민규의 신작 '더블'이었다. 물론 신청했다. 오늘 아침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문자가왔다. '오늘저녁 8시 박민규 북콘서트, 동반인원 참석여부를 알려주세요^^' 무슨 말따위라고 당연히 참석이지. 박민규의 문장을 나누던 이가 생각났다. 하아 한숨을 쉬며, 하아 어쩜 이런 문장을 쓰나. 어쩜 이렇게 탁탁 짚어내냐며, 가슴에 서슬한 바람 불게해버린 나쁜남자라고 나와 함께 그를 숭배한. 감실과 다녀왔다.


박민규의 팬클럽에서 만나 밴드를 결성했다는 '카스테라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지방에서 회사를 다녔는데, 돈이 모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닌. '이게 뭔가'의 삶을 살았단다. 박민규의 책을 읽었고, 팬클럽에 가입했고, 밴드를 결성했고, 서울로 올라왔단다. 카스테라밴드는 총 다섯명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중에는 형제도 있다. 형제가 같이 살던 방이 사기였나, 뭐였나 어쨌든 방을 잃게 되었단다. 찜질방을 전전하며 노숙을 하던시기에 밴드를 결성했단다. 답도없고, 싸구려고, 찌질하다고, 이런애들이 모여 하는 밴드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답도없고. 싸구려고. 찌질하고.
박민규의 소설에는 이런애들이 나온다. 고속도로 말고 자갈밭을 달리는 인생들. 분명 누군가는 참 쉽게 엘레베이터든 에스컬레이터든을 타고 가는데,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한 계단 한 계단 숨이 턱턱막히게 올라가야 하는 인생들. 나는 내 인생이 엘레베이터를 타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박민규를 좋아했다. 박민규의 소설을 읽으면 나 혼자만 병신은 아닌거 같아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인생에 성공과 실패가 있다고 말했다. 그 기준에 따르자면, 나는 번번히 실패였다. 박민규의 소설은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같은건 없다고 말했다. 그의 기준에 따르자면, 나는 '그냥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진행자가 박민규에게 "박민규씨는 참 마이너리티적인 인물들을 그리시는데요."라고하자, 박민규가 "본래 인간은 마이너리티인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인간은 마이너리티를 안고 극복하며 사는 가장 불쌍한 동물인데, 자신은 이런 인간이라는 동물을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글을 쓴다고. "위대한 인간이라는게 실은 얼마나 볼품없는지, 다들 아시잖아요. 그것이 승리가 아니라는걸요. 쥐라고 초등학생에게 놀림이나 받고요. 과연 무엇을 이긴거죠. 과연 무엇을 패배한거죠. 결국 다 살아가는거잖아요." '작고 힘없는 노인'이 꿈이라는 박민규가 어수룩한 말투로 느릿느릿 말했다.


나이가 들었나. 아니면 나이에 비해 내가 조로했나. 완벽한 행복같은 건 없고, 모든 인간은 불충분하게, 아픈 가시하나쯤 박힌채 살아간다는 쪽에 마음이 기운다. 남들에게 내가 '부러운 인생'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한가득인 적도 있었다. 그런데 평생 그 기준에 맞춰 살다가는 '나 없는 내 인생'이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또 '불쌍하게만 보이며' 사는 것은 자존심이 상해 싫었다. 그냥. 적어도. '내 기준'의 실마리는 부여잡고 살고 싶다. 매 번 그 사이에서 휘청인다. 그래서 박민규의 소설을 읽는다. 그러면 나는 조금 더 '내 기준'을 부여잡게 된다. 이미 놓쳐버린 엘레베이터에 속상해하지 않고 그냥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고만다. 좀 덜 부러워하고 좀 덜 부끄러워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박민규가 참 고맙고 좋다.


-날리,


-살아내기,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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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모임이 시작됐다. 첫 시작은 선생님과 함께. 1기부터 3기까지, 여럿이 모였다. 20년 터울부터 동갑내기까지 다양하다. 그렇게 오랜만에 모였다. 
 
 
막걸리 20병이 비워질즈음, 자신의 2010년에 관해 얘기 해보자 했다. 고스톱방향 이었는데, 된장 내가 두번째였다. 무슨얘기를 해야할까. 올 한해 내가 무얼 가장 생각했을까. 무얼 가장 많이 고민했을까. "제가 올 한해 장례식장을 참 많이 다녀왔어요." 생각할 시간도 없이 이 말이 나와버렸다. 정말 참 많이 다녀왔다. 어쩜 그렇게들 다들 떠나나 싶게 많이들 떠났다. 다행이라면 직접 치룬 장례가 없었다는 정도려나. 하지만 남은 이들의 한숨과 눈물, 부서질것 같이 휘청이는 작은 어깨와 한 줌의 재를 지켜보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었다. 사는게 뭔가, 어떻게 죽어야 하나 싶다가도, 열번 넘게 빈소를 찾게 되자 나중엔 그냥 진이 빠져버렸다. "날 때 순서는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더라구요. 그러니까 그냥 오늘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너무나 당연한 얘긴데, 실천이 더럽게 어렵다. 오늘에 집중하자 싶다가도 뭐 그렇게 신경쓰이는게 많은지. 비교하며 좌절하고 더 못가져 더 못해서 안달한다. 나보다 남한테 신경쓰다 또 결국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수 많은 빈소가 진빠지게 했다는 것도 결국엔 자기연민 일지도 모르겠다. 하루 이틀이면, 길어야 몇 주도 안되어 누가 이 곳을 떠났나 싶게 잊고 그냥 살고 있으면서. 그 감정에 빠지고 싶으니까 괜히 이것저것 끌어들이는. 이게 참말이지 싶다. 2011년에도 사람들은 계속 떠나겠지. 어느별에서 누군가 반짝이며 태어나는 만큼, 참 쉽게도, 어이없게도 혹은 예정된것 처럼 제 갈길을 가니까.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것도 알 수는 없지만, 그러니까 그냥 좀 오늘을 잘 보냈으면 좋겠다.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사는 오늘이 '잘'보내는 건지 또 이걸 생각해봐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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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수업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는 화가언니가 있다. 송년회에서 만난 언니는 좀 지쳐보였다. 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언니의 조카가 얼마전 떠났다고. 교통사고 였다고. 스물다섯이였다고. 우리, 벅차지만 그냥 오늘을 잘 살자고. 언니가 그랬다.


-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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