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08배를 드리고나서 한줄 한줄 써내려 간다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보면 모두가 다, 모든게 다 이해간다. (그녀가 굳이 무념무상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108배를 하고 글을 썼기 때문이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노희경의 작품들은 좀 불편하다. 악녀와 비련의 여주인공이 화끈하게 나뉘어 실컷 욕하면서 보는게 요즘 드라마의 관점 포인트인데, 그녀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딱히 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 쟤는 저런 사정이 있어서 저따위 성격을 갖게 됐구나, 아 쟤는 저런 아픔이 있어서 지금 이러한 행동들을 하고 있구나. 캐릭터만 뚝딱 만들어놓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휘몰아치는게 아니라 그 각자의 사정들을 자분자분 전하는거다. 그러니 모든게 다 이해될 수 밖에. 자기분석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기분도 들고 나를 대입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현실감이 들어버려 영 개운찮다. 판타지를 보는게 아니라 환상없는 철저한 현실을 조명하는거 같아서, 굳이 모르고 싶은 상황과 관계들도 알게 되니까. 아무리봐도 비호감인 저 사람도, 딴에는 어떤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무작정 미워하자니 나도 열반의 길에 들어서야 하나 싶고. 어쨌든 노희경의 드라마는 '멍'하니 볼수없는 오만가지 단상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게 그녀의 힘이자 저조한 시청률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그녀들의 방'을 보며 노희경을 떠올렸다. 어쩐지 모든게 이해되기 때문이랄까. 지긋지긋하게 살아내고 있는 두 그녀들을 바라 보면서. 언주가 끝까지 이해못할 석주의 판단도, 석주가 그다지도 두려워하는 '발견되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도.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바라보는 나는 모든게 다 그런거라고, 각자의 사정이 있다고 이해하고 그녀들을 토닥이는 심정이 돼버렸다. 이럴때 여지없이 드는 의문은 '인간은 본디 선한가, 악한가 혹은 환경이 인간을 몰아가나' 인데, 아무래도 난 환경에 지배당하기 쉬운 것이 인간이라는 것에 마음이 동한다. 한때는 '너만 잘하면 돼'라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신봉했지만, 그게 딱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상황은 아니라는 걸, 전반적인 구조와 체계들이 어엿하게 존재하고 있다는걸, 알고보면 개인이 선택하거나 판단하는 건 극히 적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래서 난 언주도 석주도. 언주의 선택도 석주의 선택도 미련하거나 답답해 보이지 않고 마냥 '그래그래' 고개가 끄덕이더라. 그러니 물론 보는 내내 마음은 영 찜찜하고 불편할 수 밖에.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니까. 아니 벌써 존재하고 있는 지독한 현실들이니까.
-날리,
나는 '그녀들의 방'을 보며 노희경을 떠올렸다. 어쩐지 모든게 이해되기 때문이랄까. 지긋지긋하게 살아내고 있는 두 그녀들을 바라 보면서. 언주가 끝까지 이해못할 석주의 판단도, 석주가 그다지도 두려워하는 '발견되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도.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바라보는 나는 모든게 다 그런거라고, 각자의 사정이 있다고 이해하고 그녀들을 토닥이는 심정이 돼버렸다. 이럴때 여지없이 드는 의문은 '인간은 본디 선한가, 악한가 혹은 환경이 인간을 몰아가나' 인데, 아무래도 난 환경에 지배당하기 쉬운 것이 인간이라는 것에 마음이 동한다. 한때는 '너만 잘하면 돼'라는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신봉했지만, 그게 딱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상황은 아니라는 걸, 전반적인 구조와 체계들이 어엿하게 존재하고 있다는걸, 알고보면 개인이 선택하거나 판단하는 건 극히 적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래서 난 언주도 석주도. 언주의 선택도 석주의 선택도 미련하거나 답답해 보이지 않고 마냥 '그래그래' 고개가 끄덕이더라. 그러니 물론 보는 내내 마음은 영 찜찜하고 불편할 수 밖에.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니까. 아니 벌써 존재하고 있는 지독한 현실들이니까.
-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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