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자꾸만 '의연해질 것'을 요구한다. 그 의연함은 지금,을 똑바로 바라보는 힘이 되기도하고 지금,을 무리없이 살아내는힘이기도 하다. 전자의 의연함이 고민의 연속이라면 후자의 의연함은 합리화의 연속이 아닐까. 어떤 의연함을 택하는지에 따라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들이 변한다. 비정규직 법 유예안을 놓고 여당도 야당도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주장이다. 둘의 논리는 얼핏들으면 모두 옳다. 의연하게 경기침체의 어려운 짐을 나누어 지며 대량해고 사태를 막아야하기도하고, "비정규직의 남용을막는다."는 비정규직 법안의 본래 취지 앞에서 의연하게 이를지켜내려 저항해야하기도 한다.
의연함의 실체란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의연함은 6월 10일 광장에서다. 아홉시가 넘어선 광장은 작년의 광장처럼 시민악단이 존재하거나 삼삼오오 대로변에서 토론을 하거나 깃발이 나부꼈다. 달라진건 그것이 가능한 광화문 거리의 '길이' 정도인데, 이순신 장군동상에 훨씬 못미친 프레스센터도 못간 지점에 무장한 경찰들이 막고 있었다. 그 맨앞에 노란색 민변조끼를 입은 권영국변호사가 있었다. 그는 '용산 참사 피고인 변호'를 맡고있는데,몇 주전 '진실은폐, 편파 왜곡 수사 검찰 규탄대회'를 마친 뒤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사진이 한겨레21 표지에 실려 익숙해진 얼굴이다. 6월 10일의 광장에서 그는 맨 앞에서 뒷짐을 지고 꿈쩍하지 않고 한마디도 하지 않은채 서 있었다. 최루액 냄새가 났고 모두들마스크를 쓰거나 팔을 휘저으며 냄새를 떨치고 있었다. 행진을 주장하기도 하고 전경에게 욕을 내뱉기도하고 서로 한숨을 내쉬기도했다. 그 대열의 맨 앞에 있는 권영국변호사를 보며 나는 '의연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무엇에도 의연해져본적 없고 의연함을 고민해본적도 없을 뿐더러 어떤 의연함을 택할 것인지도 몰랐던 나는 그날 광장에서 의연함을 마주한 이후 계속해서 의연함을 고민한다.
그는 최근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경찰에 강제 연행되었다. 그의 이름 석자를 쳐보니 최근의 쌍용자동차 노조의 파업이나용산참사 뿐아니라 2006년 고 하중근 포항건설노조 조합원 사인규명 진상조사단을 비롯 노동자들에 관한 어지간한 기사들이 모두 나온다. 그전에 그를 알았다거나 한 마디 나누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단지 근처에서 슬쩍 봤을뿐이면서 느껴졌던 '의연함'이 이해되었다.
-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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